글번호
126941
작성일
2024.04.26
수정일
2024.04.26
작성자
김광개토
조회수
226

인하 정체성과 아카이브

인하 정체성과 아카이브


  우리 학교의 50년 역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하와이 교포의 성금을 바탕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설립한 초창기 ‘인하공과대학’의 역사와, 한진상사가 재단으로 들어선 이후 종합화된 ‘인하대학교’의 역사이다. 이 둘 사이에 미묘한 단절과 긴장의 분위기가 있다. 인하대에 몸담은 지 오래지 않은 필자로서 그러한 분위기를 경험적으로 감지하기는 어렵지만 이번에 ??인하 50년사??의 한 부분을 집필하면서 느끼게 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인하대 설립에 의의를 두고 거기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며 향수에 젖는 분위기가 한편에 깔려 있다면, 다른 한편 그 지나친 부각에 부담감을 느끼며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고 이를 살려 도약을 꾀하려는 분위기가 덮씌워져 있다고 느낀다.
  초창기 동문들과 그 조직은 대체로 초창기의 자부심과 공과대학으로서의 명성을 되살리고 싶어한다. 반면 독재정권의 출발인 이승만 대통령이 인하대를 설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 혈기왕성한 1980년대 전반의 학생들은, 이승만의 동상이 교정에 있다는 사실을 참지 못하고 밧줄을 걸어 끌어 내렸을 뿐 아니라, 인하대 설립의 토대는 하와이 교포들의 피땀어린 정성이라고 주장했었다.
  개교 40주년을 전후하여 1994년과 1997년 두 차례에 걸쳐 동창회와 학생회가 인하뿌리찾기운동의 일환으로 하와이를 방문하였다. 이승만이 운영했던 한인기독학원을 찾고, 하와이 교포의 삶과 인하대와의 관련성을 찾아 답사에 나선 것이다. 인하대 설립을 이승만이 주도하였든, 하와이 교포들의 정성이 보다 소중하다고 보든 간에, 초창기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이 모아진 결과일 것이다.
  학교로서도 하와이 교포와의 관련성, 이승만 대통령의 역할 등을 무시하지 못한다. 하와이 교포들의 성금으로 지어진, 현재 배구코트로 사용되고 있는 낡은 체육관의 건물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 하와이 교포들이 학교설립의 종자돈을 마련해 주었을 뿐 아니라 때때로 우리 학교를 방문하여 장학금을 주는 등의 관심에 대한 답례의 뜻을 담아, 작년 1월 하와이에서 열린 ‘하와이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에 학교측에서 헌금을 한 일. 이런 일들은 인하대와 이승만 및 하와이 교포와의 인연을 배려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승만 및 하와이와의 인연을 마냥 부추기고 학교의 정체성을 거기서만 찾기도 거북하다. 하와이와의 인연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하와이에 있는 교육기관과 교류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교포단체와의 왕래도 없다. 재단이 바뀌고 종합대학이 된지 3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초창기 설립과정이나 하와이 민족운동의 빛바랜 후광만을 돌아보는 것도 부끄럽다.
  학교에서는 ‘르네상스’ 개념을 내세워 지금은 제4 르네상스의 도래를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 네 번째까지 이르렀는지 구성원들은 거의 모른다. 슬로건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이 내면적으로 공감하는 인하정체성의 확립이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 학교의 역사와 그 특성을 이해하고 그 토대 위에서 현재와 미래를 사고하는 것이 습관화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인하 50년 역사에 대한 이해와 냉정한 자기평가가 필요하다.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인문학 중심의 지성학특강에는 외부 명강사진이 출연한다. 그 중 문화유산의 답사에 해박한 지식과 안목을 가지신 강사 한분이, 인하(仁荷)대학교의 교명을 한자어로 풀어서, ‘어진 것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의 학교’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분이 강연시간보다 일찍 우리 학교에 오셨기 때문에 나는 그 분에게 학교를 어떻게 안내할까 생각했다. 어디를 가면 우리 학교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까?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나라 유일의 ‘수준원점’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과학자가 아니니 별무관심일 것이다. 이럴 때 학교를 소개해줄 수 있는 자료관이 있으면 좋으련만···. 결국 인천과 하와이의 조합에 의하여 교명이 지어졌고, 그 이면에 많은 설립 비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하여, 뜻풀이는 덕담이지만 인하정체성과는 전혀 무관한 해석을 방치하고 말았다.
  창립과정과 그 정신, 그리고 학교가 걸어온 길과 성과를 보면 자부심을 가지고 소개할만한 것이 적지 않은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준비와 배려가 너무 부족함을 깨닫는다. 지난 일을 돌아보면서, 비판과 평가를 토대로, 발전을 모색하는 데 익숙지 않은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학교에서 발간하는 각종 간행물, 행정문서류, 행사의 전말과 팜플렛, 학생들의 활동상을 담아낸 각종 자료들, 이것들을 모아 정리하는 곳이 아무 곳에도 없다. 역사학자인 필자조차도 서가가 비좁다고 쓰레기통에 쓸어 넣기 일쑤다. 맨날 하와이와의 인연을 강조하고, 인하뿌리찾기운동을 한다고 하와이를 집단적으로 두 번이나 방문하고서도 남겨놓은 쪼가리 하나 찾을 수 없다. 50년을 헤아리는 인하대학교의 역사가 한국 지성사, 아니면 한국 과학사의 어느 부분을 점하고 있는지, 인천지역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점검하고 평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교 50주년을 기념하여 『인하 50년사』 가 간행되고, 개교기념일을 기하여 정석학술정보관에 ‘인하 50년사 전시회’가 열린 뒤 이를 박물관에 상설 전시한다고 하니, 너무 다행스럽다. 기록과 유물의 전시에 그치지 않고, 항상적으로 기록물을 수집하여 해마다 ‘연보’를 내는 방식으로 역사를 정리해 가는 한편, 수집된 기록물과 유물을 보존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할 상설적인 ‘인하 아카이브(Archives)’로의 질적인 발전을 꾀하는 것이야말로, ‘국내 7위, 세계 100위권의 명문사학’으로 발돋움하려는 우리 학교에 결여되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영호, 문과대학 인문학부 사학전공, 교수)
(2004년 4월 인하대학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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