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그 설레임
환경공학과 배재호
(사진 1. 와인 잔을 이용한 사진)
와인은 커피와 유사한 점이 많은 기호식품으로,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명확하고, 일부는 부작용을 호소하기도 한다. 또한 소믈리에나 바리스타는 아니더라도 즐기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떼루아, 아로마, 부케, 디켄팅 등 전문 용어 및 카베르네 쇼비뇽, 메를로, 피노누아, 시라, 샤르도네, 말벡, 네비올로, 산조베제, 템프라뇨 등과 같은 다양한 포도 종류도 와인을 쉽지 않게 만든다. 그러나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도 와인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나의 경험을 중심으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내게 있어 와인의 가장 큰 장점은 여행의 풍요로움을 더해준다는 점이다. 캐나다 퀘벡 근처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와인을 만드는 길가 조그마한 집을 방문하였다. 와인 제조의 첫 과정인 청포도를 으깨어 만든 포도즙 한잔을 얻어 마시자 마치 심 봉사가 눈을 뜨듯 오랜 운전으로 몽롱해진 나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박카스 한 박스를 마신 것처럼. 그때 마신 청포도즙은 내가 세상에서 마셔 본 가장 달콤한 액체이다. 참고로 와인을 만드는 포도의 당도는 식용포도보다 30% 이상 높다. 캐나다에서의 기억은 헝가리에서 수확 후 남은 포도를 비닐 봉지를 이용하여 포도즙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으로 이어졌고, 여행지에서 즙을 만들어 먹는 재미는 제주도 구좌의 당근주스로까지 확장되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밭에서 갓 수확한 당근으로 직접 만든 주스와 비자림 매표소앞에서 파는 100% 당근주스의 맛을 비교해 보시길 권한다.
좀 더 와인에 친숙해지면 여행코스에 와이너리 방문을 추가하는 것도 좋다. 와이너리에서는 와인 시음 뿐만 아니라, 괜찮은 수준의 식사도 할 수 있고 포도밭을 배경으로 와인 잔을 활용하면 꽤 그럴듯한 샷을 남길 수도 있으니… 이태리를 여행한다면 바롤로의 산지인 페에몬테에서는 알프스 끝 자락의 경치를, 브루넬로의 산지인 토스카나에서는 4월 밀밭의 눈부신 초록초록과 서울 1/10 가격의 티본 스테이크를, 아마로네 산지를 찾아가면 베니스와 베로나 관광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와인은 건강면에서도 긍정적이다.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죽는 법”의 저자 스티븐 건드리 박사가 추천하는 술은 와인이다. 레드 와인에 포함된 폴리페놀이 장내 미생물을 재구성하고 교육해서 예방하여 심장병을 예방해 준다고 한다. 따라서 건강을 위해서 와인을 마신다면 화이트가 아닌 레드 와인을 선택하여야 한다.
와인은 단점도 가지고 있다. 모든 취미와 마찬가지로 수준이 높아질수록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미국에서 가장 좋은 와인 중 하나로 알려진 Opus 1의 가격은 원산지에서 60만원으로 한 잔에 15만원 이상이다. 일행 중 한 명이 운전해야 한다고 그 비싼 와인을 한 모금만 마시고 남겼을 때 미리 그 와인이 얼마나 귀한 와인인지를 말해주지 못한 내 자신의 원망스러움이란… 과한 알코올이 주는 숙취나 부작용, 와인 셀러의 필요성도 단점일 수도 있겠다.
여기서 꿀 팁 하나.
와인을 가장 싸게 사는 방법은 년 중 가장 큰 세일 기간인 5월에 사는 것.
여름을 넘기기 위해 들어가는 보관비용이 높기 때문이란다.
반대로 최악의 구매는 명절 때 만들어진 선물용 세트.
포도원에서는 병해 감지 지표식물로로 장미를 심는다.
장미를 시종으로 거느린 와인은 콜크를 열면 시간에 따라 맛을 변화시키며 나를 설레게 한다.
새로운 와인은 새 친구의 기대를 품은 설레임.
친숙한 와인은 오래된 친구의 아늑한 편안함을 담은 설레임.
그 설레임으로 나는 여행을 가면 새로운 와인을 품고 오게 된다.